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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 <피의 연대기> ★4.5 본문
얼마 전에 꼭 보리라고 벼르고 별렀던 <피의 연대기>를 봤다. 상영관이 너무 적어서 진땀을 뺐지만, 적어도 볼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한다. 곧 있으면 중소극장에서도 내리는지라 행운이라고 여긴다.
<피의 연대기>는 SNS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제작을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기 때문일까, 거기에 생리컵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영화가 제작되고 있구나, 라는 걸 알았다.
계속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내가 있는 지역에 감독님을 초대해 대담을 나누는 행사를 놓쳐버려서 씁쓸함을 안고 며칠 지나서나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이런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
나 자신이 생리컵 유저이기 때문에, (이제 1년차지만) 그리고 생리를 시작하기 전과 시작해온 뒤 쭈우욱 생리에 대해 고민해왔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월경, 달거리, 생리.
터부시되어왔던 여자의 피흘리는 기간.
문명이 시작된 지 몇천 년 만에 우리는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리쳐 표현하고 함께 요구하고 대화를 나누며 공감한다. 그런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 <피의 연대기>다.
한국, 네덜란드, 영국, 미국을 넘나들며.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찡하고 울려왔다. 이제껏 그런 이야기가 금기가 되었지만 지금은 차차 변해가고 있다. (지금도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내가 너무 기대하고 봐서일까. 온건한 측면이 눈에 들어왔다. 생리와 관련된 남자들의 여혐을 비판하는 방식이 온건했다는 뜻이다.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라낸 만큼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점은 만족스럽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의 배경음악 '피의 연대기'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음악 영화가 아닌데도 흥겨운 음악들이 배경으로 깔리며 이 영화의 유쾌하고 신선한 매력을 북돋는다. 음원들이 '피의 연대기 OST'라는 제목의 앨범으로 음원 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팔이피플 아니다)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연출은 내가 잘 몰라서 좋다 아니다를 판가름하기 어렵지만, 날것 그대로를 담아내는 촬영 기법이 좋았다. 화려한 카메라 워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담백한 화면 구성이 내용에 집중하는 법을 도왔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이 크게 기억에 남는다. 높은 완성도에 왜곡 없이 그려진 여자의 몸이 특히 인상깊었다.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의 몸은 욕정의 대상이자 물건이나 다름없는데, <피의 연대기> 속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페미니스트 작가분들이 많아져서 너무 좋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다른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한 줄 요약:
이제껏 없었기에 더욱 소중한, 생리를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영화
평점은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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